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빈 이씨 (문단 편집) === 비극적인 삶 === 하지만 영빈의 인생은 그렇게 행복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조선에서 궁중 여인은 처소에서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왕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살아야 했다. 특히 영빈은 사도세자를 낳기 전부터 영조의 총애 덕분에 궁중에서 가장 높은 후궁에 봉해져 있기는 했지만 정작 세자를 낳고도 직접 기르지 못했다. "[[왕세자]]"라는 이유로 생후 100일이 지나자마자 생모의 품을 떠나, [[창경궁 저승전|다른 곳]]으로 옮겨져 거기서 반대파 궁인들 손에서 자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한중록]]에서는 이것이 문제였다며 '저승전(儲承殿)은 [[경종(조선)|경종]] 계비이신 [[선의왕후 어씨|어 대비]] 계시던 집으로 안 계신지 오래 되지 않고, 보모 상궁들도 어 대비 모시던 것([[소론]])들이라 작은 일도 큰 탈이 나게 하니' 등등으로 돌려 비판했다. 저승전은 평생 영조와 심각하게 대립했던 형수 선의왕후의 거소이며 보육 담당 궁인들 역시 그 측근들로 영조와 매우 척을 진 사람들이라 어린 세자에게 나쁜 영향[* 특히 장차 왕위를 잇는 막중한 사명을 지닌 왕세자에게 고작 병정놀이, 삼국지나 무인 기술잡서 등을 익히게 하고, 한중록에 한 상궁이라는 보모는 직접 장난감 칼, 활 등을 만들어 바쳤다는 얘기도 있다. 놀라고 판을 깔아준 셈이니 세자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무예와 놀이를 더 좋아해 영조가 못마땅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결국 세자에게 이런 것들을 제공한 주변인들을 한꺼번에 조진 적도 있었다. 또한 영조와 척을 진 사람들이 보모가 되어 어린 세자에게 아버지나 왕실 어른들의 안 좋은 부분을 굳이 끄집어내 이게 안 좋다거나 나쁘다는 식으로 폄하하거나 아버지와 정치색을 같이 하는 노론들은 나쁜 놈이라는 등의 이간질, 또한 영조와 영빈이 세자를 자주 찾아오지 못하게 만들어 아들과 사이가 멀어지게 만든 것 등등.]을 미쳤다는 것이다. 정조도 아버지가 일찍부터 생모 곁을 떠나 있어서 엇나갔다고 생각하여 훗날 [[의빈 성씨]]가 [[문효세자]]를 낳자 정비인 [[효의왕후]]의 아들로 입적시키되 생모 의빈이 키우게 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도세자 역시 여느 후궁 소생 왕세자들처럼 적모인 왕비의 아들로 입적되어 왕비를 어머니로 모셔야 했다. 실제로 사도세자는 [[정성왕후]]와 돈독한 사이라 그녀를 극진히 모셨고, 정성왕후 역시 세자를 친아들처럼 아껴서 영조의 구박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대변하고 보호해 주었다. 게다가 비록 정실부인과 후궁의 관계지만 영빈 이씨도 영조의 사랑을 독차지한 죄책감 때문인지 정성왕후와는 돈독한 사이였다. 영조가 후궁 [[숙의 문씨]]를 통해서 파토내려고 한 정성왕후의 회갑연을 치르자고 건의한 사람도 다름아닌 영빈 이씨였다. 사도세자는 생모인 영빈에게도 극진했다. 외롭고 자기 때문에 마음고생 심한 어머니를 안쓰럽게 여겨, 후궁의 가마를 왕비에 준할 정도로 크게 개조해 영빈을 태우고 창덕궁 후원(秘園)을 돌아다니기도 했다고. 영빈이 거절했지만 세자는 억지로 밀어넣었고 이때가 영빈과 사도세자가 모자로서 지낸 마지막 시간이었으나, 세자는 한창 영조의 미움을 받던 때라 부왕에게 질책을 들을까봐 두려워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효심을 보여 데이트(?)를 한 것이지만, 영빈은 아들의 [[정신병]]이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더 불안해 며느리 혜경궁에게 "어찌할까 보냐!"며 울었다. 결정적으로 영빈의 자녀들도 거의 다 [[요절]]했다. 막내딸 [[화완옹주]]만이 부모보다 먼저 죽지 않고 천수를 누렸으나 젊은 나이에 어린 딸과 남편 정치달을 겨우 한달 간격으로 연달아 잃었다. 게다가 화완옹주는 조카인 정조를 자식같이 대해주다가 차차 조카에 대한 집착이 비정상적으로 심해지면서 선을 넘는 행동을 하다가 오히려 정조와 적이 되고, 결국 정조가 즉위하자 [[폐서인|서인]]으로 강등당해 [[유배형]]을 받고 왕족 신분에서 정처(鄭妻), 즉 그냥 '정 모씨의 아내'라고만 불리는 서인(평민)으로 격하되는 불행을 겪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